쑥섬은 전남 고흥군 나로도항에서 배로 3분이면 도착한다. 쑥섬을 다 둘러보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섬 속의 작은 섬이다. 지난 2016년 고흥 쑥섬의 주민은 400여 년간 비밀스럽게 간직해둔 추억을 꺼내 들고 세상 밖으로 나섰다.
쑥섬 마을로 들어서면 사람보다도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얼굴이 있다. 마을에 사는 50여 마리의 고양이다. 쑥섬은 지금 30여 명의 마을 주민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 그래서 붙은 별칭이 고양이 섬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당제를 지내던 마을 주민은 제사를 지내던 중 동물 울음소리가 들리면 부정이 탄다는 믿음으로 어떤 가축도 키우지 않았다. 유일하게 허락된 동물이 고양이였다. 현재는 애묘가들이 고양이의 이름까지 외워 수시로 찾아올 만큼 고양이들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쑥섬 탐방로 입구를 따라 가파른 헐떡길을 올라가면 제주 곶자왈을 닮은 원시 난대림이 펼쳐진다. 400여 년 동안 마을 주민조차 제사를 지낼 때 외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비밀의 숲이다. 마을을 굽어보는 당 할머니 나무부터 하늘에서 온 차사가 기르는 동물을 닮은 나무까지 어릴 적 할머니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들려주시던 옛이야기들이 생생하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만큼 빼곡한 나무들만큼이나 마을 주민이 정성스럽게 지켜온 자연 그대로의 흔적이 가득하다.
산 정상에 다다르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형형색색 물감을 칠한 듯 꽃이 만발한 별정원이 펼쳐진다.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는 방문객들과 달리 땀을 뻘뻘 흘리며 꽃단장에 힘쓰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김상현(53), 고채훈(50) 씨 부부다. 섬을 개방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한 장본인들이자 쑥섬지기다.
부부는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자’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김상현 씨의 어릴 적 추억이 서려 있는 쑥섬으로 돌아왔다. 칡밭을 일구어 정원을 가꾸고, 시설 정비사업을 주도하며 자발적으로 섬을 가꾸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의심의 눈초리와 ‘잘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으로 매 순간이 고행이었지만, 점차 관광객이 늘면서 올해 2월에는 마을의 숙원이었던 상수도까지 만들어졌다. 두 사람이 피워낸 희망의 꽃이다. 작은 진심들이 모여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가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400명 넘는 주민이 풍요롭게 살던 쑥섬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어르신들만이 남아 외로운 자리를 지키던 섬에는 요즘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나이가 들며 어업 활동도 힘들어진 마을의 어르신들은 인생의 끝자락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찾았다. 고양이 보러 찾아온 아기 손님부터 인생의 전환점을 준비하는 여행객까지 한적하기만 했던 작은 섬은 매일 새로운 만남으로 가득하다.
특산물 판매장의 어머니들은 먼 길 찾아준 고마운 손님에게 쉴 틈 없이 인사를 건넨다. 마을에서 난 쑥과 해초류로 직접 만든 음식들을 판매하며 해줄 것이 없어 늘 미안함뿐이던 자녀들 앞에서도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남쪽 바다 작은 섬 쑥섬이 보내는 서툴지만 반가운 인사는 15일 밤 방송되는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에서 볼 수 있다.
한편 ‘다큐멘터리 3일’은 제작진이 관찰한 72시간을 50분으로 압축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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