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성 런엑스런 대표 칼럼] 안개, 진흙, 비, 밀림, 끝 없는 언덕, 고산족, 태양… 베트남의 오지를 24시간 동안 달렸다.

글·사진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
 


베트남. 지금이야 다양한 항공편과 정보가 있기에 베트남이 가까워졌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의외로 정보가 부족하여 대도시 외의 지역을 가려면 이리저리 찾아보고 귀동냥이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 가 보기 전까지 무식할 만큼 현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더욱이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 대회가 열리는 북부지역 사파와 그 일대는 원정 산행을 하는 사람 이외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곳 이었다. 물론 해외에서는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사파를 잠깐 소개하자면, 베트남 전체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km 떨어져 있으며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산악 마을이다. 해발 1650m 산악지대에 위치한 사파는 베트남 소수민족의 도시로 유명하다. 다양한 산악 부족들의 도시로써 12개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산 속 계곡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연중 안개 속에 묻히는 날이 많다.

사파는 테라스논과 주변 산간 소수민족을 만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여 여행객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서 걸어 다닐 수 있으며, 마을 곳곳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토속적인 물건들을 파는 소수민족들을 볼 수 있다.

사파에서 남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검은 몽족이 사는 깟깟마을과 신짜이 마을이 있고, 북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는 자오족이 많이 사는 따핀마을이 있다. 또한 베트남에서 제일 높다는 판씨판(fan si pan-해발 3143m)이 있어 최근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내가 참여한 대회는 트레일러닝이라 하여 자연 속을 달리는 장거리 마라톤 대회라 생각하면 된다. 이번의 경우는 거기에 더해 본인의 식량과 장비를 짊어지고 달리는 250km 자급자족 스타일이라 보통의 마라톤과는 많이 다른 방식의 대회였다.

베트남 대회는 오지 레이스 전문 기획사 ‘Racing The Planet’에서 만든 대회다.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거나 오지 레이스 골수 마니아들을 위한 이벤트 형식의 대회로 매년 대회 장소를 바꾸어 새로운 세계와의 소통을 목표로 한다. 베트남에서 처음 시작한 대회는 현재 나미비아, 호주 등 다양한 지역을 거쳐 올해는 파타고니아에서 개최된다.

베트남 레이스는 1년 중 가장 춥다는 2월 사파 지역에서 열렸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던 베트남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왠지 무조건 가야 한다는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이 참가한 대회다 보니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찾아 다니는 대회들의 특징은 기본 장비를 자신이 휴대하고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급자족(서바이벌) 대회들이다. 베트남 대회도 예외 없이 자급자족 대회로 열렸다. 대회는 사파 지역 전역과 판씨판 주위를 헤집고 다니는 6일간의 서바이벌 형태로 열렸는데, 달릴 거리는 250㎞ 원시림과 산길을 헤치며 달려야 하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대회 장소까지는 하노이에서 9시간 동안 야간열차를 타고 사파에 도착하여, 미니버스로 5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표면적으로는 머나먼 여정이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야간열차의 낭만은 사파를 가려면 꼭 야간 열차를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회가 열리는 마을과 지나가며 만나는 마을에서는 종종 키가 작은 현지 소수민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체구는 작지만 화려하게 꾸며 입은 그들은 외지에서 온 우리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으로 대해주었기에 거리감을 느낄 수 없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 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많은 비로 인해 일부 코스에 산사태가 있었기에 첫날 코스가 120㎞에서 105㎞로 단축 됐다는 소식이 우리에겐 커다란 위안으로 들려왔다. 아무리 좋아서 대회를 찾아 왔지만 코스 길이가 줄어 든다는 사실은 모두를 춤추게 만드는 놀랍고 기쁜 뉴스였다. 현지 민속 공연팀의 한마당 축제 후 5박 6일 지옥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출발 전 주최측에서는 현재 이곳에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모두 안전에 최대한 신경을 쓰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급조한 다이어트로 가벼워진 몸과 적당한 무게의 배낭은 나를 선두권 15명 그룹에 속하게 만들며 무난한 레이스로 이끌었다. 하지만 15㎞ 지점을 몇 백m 안 남긴 자갈지역에서 돌 하나를 잘못 밟았다. 오른쪽 다리가 찌릿하더니 대퇴근에 순간적인 마비 증상이 생겼다. 이후 나의 레이스는 부상 후유증으로 악몽의 시간이 되었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 강을 건넌 후 본격적인 언덕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1000m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배낭에 부착했던 스틱을 사용하며 조심조심 올라갔다. 라오카이에 도착하면서부터 비를 만났는데 이곳은 이전부터 비가 내렸던 것 같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점점 진흙밭으로 바뀌고 있었다.

가뜩이나 미끄러운 바닥에 오른쪽 다리까지 힘이 빠지다 보니 자꾸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이제는 여러 번 꺾여 넘어진 무릎까지 시큰거린다. 다리는 아픈데 자욱한 안개까지 길을 막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안 보이는 길을 가려니 이건 완전 지옥으로 가는 기분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오르막도 세 번째 체크포인트 근처부터 내리막으로 변하면서 길이 좋아졌다. 제법 규모 있는 마을에 체크포인트가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씨에도 현지 주민들이 잔뜩 구경을 나와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일본인 지카게 씨와 길을 가는데 어둠이 찾아오며 안개와 함께 다시금 비가 시작된다. 안개가 너무 심하니 랜턴을 켜도 앞이 잘 안 보인다. 코스는 좌측으로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대책 없이 높은 절벽이며 오른쪽은 언제 산사태가 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길이다.

네 번째 체크포인트부터는 엄청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추위와 비 때문에 고어텍스 재킷을 꺼내 입고 가는데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발목도 삐었는지 많이 부었고 넓적다리 통증으로 인해 앉아서 스트레칭하기도 힘들 정도다. 추위 때문에 재킷 모자를 눌러 쓰고 버프로 얼굴을 가리고 가는데, 라오카이 인근 커다란 마을에서는 코스에 야광스틱이 안 보인다. 현지 아이들이 죄다 집어 갔기 때문이다.

어렵게 다섯 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온수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참가자 전용 텐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앞으로 21㎞만 더 가면 골인이라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계속 가기로 했다. 마지막 체크포인트를 지나 길을 가는데 동네 개들이 집단으로 덤벼든다. 난 개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틱으로 후려쳐 쫓아낸다.

멀리 언덕 위에 도착지점을 알리는 깃발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몽사몽 피곤함과 다리의 통증으로 힘들게 기다시피 언덕을 올라가 골인 지점에 도착했다. 말이 105㎞이지,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23시간 25분이 걸렸다.
 


베트남 레이스의 마지막 날. 쏟아지는 아침 햇살과 주위의 푸르름이 뿜어내는 아찔한 산뜻함이 느껴진다. 모든 참가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최대한 멋있는 옷차림을 준비하여 사파 입성을 준비한다.

골인 지점으로 가는 나에게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축멍~”(축하합니다)이라고 한다. 나도 합장하며 “깜언~”(감사합니다)이라고 화답한다. 서로의 얼굴에서 밝은 웃음이 교차한다. 그들의 환한 미소를 통해 힘들었지만 행복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 남길 수 있었다.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은 도로를 벗어난 산길, 공원, 초원 등의 자연 속을 달리는 스포츠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일 러닝 대회는 현재 컬럼비아가 후원하는 [울트라 트레일 마운틴 몽블랑: UTMB]]로 160~170km를 달리는 경기이다. 한국에는 수도권 유일의 국제공인 대회인 Korea 50K(www.korea50k.com)와 UTMJ, 거제지맥, 제주 트레일 등이 있으며, 런엑스런(www.runxrun.com)에서 다양한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다. 국제적 기구로는 ITRA 국제 트레일러닝 협회(www.i-tra.org)가 있으며, 한국에는 KTRA 코리아 트레일러닝 협회(www.k-tra.org)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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